지난 1997년 10월 첫 출시 이후 국내 고급차 시장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던 쌍용자동차 체어맨 H가 1세대로 시작해 1세대로 끝난 18년간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2014년 12월 31일부로 단종됐다. 

체어맨은 벤츠와 기술제휴계약을 맺고 4년 6개월간 5천억원 가량을 투자해 공동개발한 쌍용의 첫 승용 모델이자 플래그쉽 대형 세단이다. 데뷔 당시 동급에서 가장 길고 넓은 차체 크기를 자랑했으며, 보수적 성향이 짙었던 국산 고급차 시장에 라운드 위주의 유럽스타일 외관을 적용해 공기저항계수 0.29의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파워트레인은 배기량 3200cc 6기통 엔진을 장착해 220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했으며, 국내 최초로 5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하고 대형차로는 처음으로 1등급 연비를 획득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터치스크린식 멀티비전 시스템과 첨단 내비게이션을 적용했으며, 최상위 모델 기준으로 6천만원에 육박하는 가격 등 그 당시에는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녔다. 

쌍용차는 체어맨의 출시로 국산 대형 세단 부문 판매 1위는 물론 국내 고급 수입차 시장 판매량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벤츠와 쏙 닮은 외모 때문에 벤츠로부터 외관 디자인 수정 요청을 받았고, 벤츠가 판매되는 지역으로의 해외 수출 금지와 모터쇼 출품 자제 등을 요청받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1997년 말에는 우리나라에 IMF가 불어닥치면서 쌍용그룹이 경영악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쌍용차를 대우그룹에 매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체어맨은 기존의 쌍용 심볼을 버리고 대우의 아이덴티티인 삼분할 그릴을 적용하기도 했다. 대우로서는 당시 아카디아를 대체할만한 차종이 없었기에 쌍용차의 인수가 매력적으로 작용했지만, 추후 대우마저 부도를 맞이하게 되면서 체어맨을 비롯한 쌍용차에게는 결국 아픈 추억으로 남았다. 

2003년에는 출시 6년만에 부분변경을 거친 뉴 체어맨이 출시됐다. 기존 체어맨의 외관 앞 뒤 형상을 변경하고 크롬을 적절히 사용해 보수적인 이미지를 강화했다. 또한, 각종 편의 및 안전장비를 개선해 현대 에쿠스, 기아 오피러스, GM대우 스테이츠맨 등과 경쟁을 펼쳤다. 2006년에는 판매량이 미미했던 2.3리터 엔진을 장착한 400S 모델을 단종시키고 3.6리터 엔진과 편의장비를 추가한 700S 모델을 도입했다.

2008년에는 체어맨 후속으로 개발된 차종이 체어맨 W라는 이름으로 명명되면서 기존 체어맨은 체어맨 H로 차명이 변경된다. 그때부터는 가격을 낮추고 체어맨의 보급형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이전의 경쟁 차종들보다 아랫급인 제네시스 등과 새로운 경쟁구도를 이뤘다. 하지만 새롭게 출시되는 신차들과 경쟁하기에는 상품성이 뒤처지고 보급화 정책으로 인해 체어맨의 네임벨류까지 하락해 기존 고객들마저 이탈하게 되면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11년 체어맨 H는 상품성 강화를 위해 다시 한 번 부분변경을 감행한다. 기존 체어맨이 뉴 체어맨으로 변경되면서 보수적인 이미지를 추구했다면, 새롭게 출시된 체어맨 H 뉴 클래식은 한층 젊어진 디자인과 추세에 맞는 LED 등을 사용해 세련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내도 체어맨 W와 동일한 구성의 레이아웃으로 변경하고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편의장비를 보강해 상품성을 개선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판매부진 속에 결국 단종을 맞이했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체어맨의 명맥을 그대로 이어온 모델인 체어맨 H는 결국 나날이 발전하는 경쟁 차종들보다 부족한 상품성으로 인해 쓸쓸히 역사 속으로 퇴장했지만, 체어맨이 국내 대형 고급차 시장의 발전에 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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